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가기로 명세한 나와 크리스천들에게 증인의 삶에 대하여 말씀해 주시며 당연히 살아가야 할 증인의 삶을 잘 살지 못하였으면 속죄제를 드리라고 하신다.
요한복음4장24절에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라고 하신 것처럼 우리의 예물이 동물이나 가루 등 현물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의 신령과 진정의 삶 이어야 한다.
그럼 신령과 진정의 삶이란 어떤 삶일까?
우리가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데 즉 구약에서 우리들이 드리는 예물을 흠 없는 것으로 드리라는 내용을 잘 못 적용하여 신령과 진정의 삶을 고도의 도를 닦은 절제된 경지의 삶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드리려야 할 속죄제의 제물인 신령과 진정의 삶이란 절제되고 정형화된 높은 경지의 삶 즉 죽어있는 삶이 아니라 보기에는 부족하지만 살아있는 삶으로 내 중심의 삶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삶이 되어야 한다.
때문에 우리 조각바람이 가고 있는 정직의 회복과 사랑의 속삭임의 삶이 얼마나 멋지고 경쟁력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마땅히 살아가야 할 삶임을 인정하고 감사하며 달려가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도전한 이 삶의 비밀인 생명력을 놓치면 정말 어렵게 된다는 것이다. 즉 어떻게 보면 어려운 삶이 되었다가, 또 너무 경쟁력 없는 삶이 되었다가, 또 목표를 놓치는 삶으로 방향감각을 잃어 버리게 되면 무기력에 빠지는 위험이 향상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들은 스스로를 위해서 마땅히 깨어있는 삶인 신령과 진정의 삶을 살아야 한다.
어제 교회의 일정에 따라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어 두 명의 안수집사와 장로가 가게로 찾아왔다.
물론 나 때문에 왔다.
이번 수련회나 몽골 건등 사전협의 없이 일방적인 결정에 대하여 당회장 장로의 불만이 많다고 했으며 또 예상한 대로 목사와 장로의 대립이 각을 세우는 것 같다. 지난 목요일 대책 모임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아마 좀 심각 했다고 했으며
목사의 변한 행동 즉 노인 껴안기나 40대 일꾼 만들기 등을 장로로부터의 외면에 대한 목사의 지지층 확보로 보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아내에게 이전 모습이 좋았다고 생각난다며 내가 보기에는 몸에 베인 겉 인사에 아내는 신이 났다. 그리고 또 한 분의 권사로부터 호박죽을 먹으로 교회로 오라는 전화를 받는 등 찬란한 추억으로의 이끌림은 곧 현실의 불만으로 나타났다.
불평과 불만으로 튀는 럭비공 같은 아내를 두고 서둘러 퇴근을 했다. 아침에 왔지만 저기압이다. 앞에서 말 했지만 우리들도 생명력의 비밀을(주님의 은혜) 놓치면 이렇게 된다는 것을 확인하며 정말 깨어 있도록 서로 돌아보며 노력을 해야겠다.
우리는 모임의 의미보다 깨어있기 위하여 모임에 집중해야겠다. 우리들의 경쟁력인 생명의 촉수가 죽어 버리면 우리는 그냥 시체다. 우리의 나태함이 화분의 꽃을 죽이듯이 우리 스스로를 죽인다.
따라서 우리의 나태함이 무관심으로, 무관심이 구성원으로 불평과 불만으로, 불평과 불만이 사망으로 이끌어 가지 못하도록 우리들이 깨어 있어야겠다. 이를 위하여 오늘도 열심히 하루를 누리며 증인의 본분에 충실하기 위하여 화이팅! 해야겠다.
요한복음4장24절에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라고 하신 것처럼 우리의 예물이 동물이나 가루 등 현물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의 신령과 진정의 삶 이어야 한다.
그럼 신령과 진정의 삶이란 어떤 삶일까?
우리가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데 즉 구약에서 우리들이 드리는 예물을 흠 없는 것으로 드리라는 내용을 잘 못 적용하여 신령과 진정의 삶을 고도의 도를 닦은 절제된 경지의 삶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드리려야 할 속죄제의 제물인 신령과 진정의 삶이란 절제되고 정형화된 높은 경지의 삶 즉 죽어있는 삶이 아니라 보기에는 부족하지만 살아있는 삶으로 내 중심의 삶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삶이 되어야 한다.
때문에 우리 조각바람이 가고 있는 정직의 회복과 사랑의 속삭임의 삶이 얼마나 멋지고 경쟁력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마땅히 살아가야 할 삶임을 인정하고 감사하며 달려가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도전한 이 삶의 비밀인 생명력을 놓치면 정말 어렵게 된다는 것이다. 즉 어떻게 보면 어려운 삶이 되었다가, 또 너무 경쟁력 없는 삶이 되었다가, 또 목표를 놓치는 삶으로 방향감각을 잃어 버리게 되면 무기력에 빠지는 위험이 향상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들은 스스로를 위해서 마땅히 깨어있는 삶인 신령과 진정의 삶을 살아야 한다.
어제 교회의 일정에 따라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어 두 명의 안수집사와 장로가 가게로 찾아왔다.
물론 나 때문에 왔다.
이번 수련회나 몽골 건등 사전협의 없이 일방적인 결정에 대하여 당회장 장로의 불만이 많다고 했으며 또 예상한 대로 목사와 장로의 대립이 각을 세우는 것 같다. 지난 목요일 대책 모임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아마 좀 심각 했다고 했으며
목사의 변한 행동 즉 노인 껴안기나 40대 일꾼 만들기 등을 장로로부터의 외면에 대한 목사의 지지층 확보로 보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아내에게 이전 모습이 좋았다고 생각난다며 내가 보기에는 몸에 베인 겉 인사에 아내는 신이 났다. 그리고 또 한 분의 권사로부터 호박죽을 먹으로 교회로 오라는 전화를 받는 등 찬란한 추억으로의 이끌림은 곧 현실의 불만으로 나타났다.
불평과 불만으로 튀는 럭비공 같은 아내를 두고 서둘러 퇴근을 했다. 아침에 왔지만 저기압이다. 앞에서 말 했지만 우리들도 생명력의 비밀을(주님의 은혜) 놓치면 이렇게 된다는 것을 확인하며 정말 깨어 있도록 서로 돌아보며 노력을 해야겠다.
우리는 모임의 의미보다 깨어있기 위하여 모임에 집중해야겠다. 우리들의 경쟁력인 생명의 촉수가 죽어 버리면 우리는 그냥 시체다. 우리의 나태함이 화분의 꽃을 죽이듯이 우리 스스로를 죽인다.
따라서 우리의 나태함이 무관심으로, 무관심이 구성원으로 불평과 불만으로, 불평과 불만이 사망으로 이끌어 가지 못하도록 우리들이 깨어 있어야겠다. 이를 위하여 오늘도 열심히 하루를 누리며 증인의 본분에 충실하기 위하여 화이팅!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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