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생각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

패스라 2008. 11. 22. 16:48

마태복음 22장에서 예수께서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고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는 것으로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하신다.

 

이를 두고 목사들은 첫번째 계명에 우선 순위를 두거나 또는 두 계명이 실질적으로 하나라고 하거나 또는 예수님께서 두번째 계명으로 두 계명을 완성하고 우리들도 그렇게 따라 할 것을 요구한다고 하면서 그 이유로 눈에 보이는 두번째 계명을 지키는 것을 보고 첫번째 계명의 지킴을 스스로 점검하고 또 시험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면서 본질을 왜곡 변질하여 자신들의 배를 채우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접근하는 것은 이웃사랑과 교묘하게 위장된 자기 자랑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으로 사랑하는 이유와 본질을 놓친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자기 목숨보다 소중한 것이 외아들인 것처럼 왜곡하는 것도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 마태복음에서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라고 할 뿐 아니라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고 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크리스천들이 소유한 모든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라 하여 불신자들의 소유와 구별하는 우를 범할 뿐 아니라 또 그 받은 모든 것을 나누지 않고 혼자서 누리는 것은 값산 은혜라고 폄하하는 것은 오히려 심각한 오류이다.

 

왜냐하면 신앙에 관계없이 모든 인간들에게는 같이 비를 내려 주듯이 이 세상을 더불어 살아 갈 마음을 우리들이 보고 듣고 알고 있는 것처럼 모두에게 허락해 주셨기에 크리스천들이 말하는 그런 섬김과 사랑과 봉사는 종교나 믿음에 관계없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크리스천의 그런 모습을 신앙으로 연결하여 더 나은 의나 참 은혜를 운운하며 결과적으로 헌금과 봉사를 이웃사랑의 이름으로 요구하며 그런 잣대로 정치 경제 사회 등 이 세상의 삶에 크리스천의 지도자로서 영향력을 확장해 가는 것은 정말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왜냐하면 첫째,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을 이 세상의 관점에 보았기 때문이고

 

둘째, 예수님의 사역의 본질을 놓친 것으로 이를 요한 계시록에서 책망을 받은 다섯 교회를 통하여 증거하고 있다.

 

그리고 사도행전에서 보여주는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고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는 세상은 우리들이 소망하는 세상이지만 피조물인 우리 인생들이 스스로는 절대로 이룰 수 없는 불가능의 세상임을 보여 주시고 그런 세상인 새 하늘과 새 땅인 하나님의 나라를 허락해 주신 것임을 알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값 산 은혜라고 폄하하는 그 은혜가 바로 그 나라의 비밀로 우리들이 하지 못한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을 주님께서 대신해 주신 그 은혜를 은혜로 받아 누리는 것이 바로 증인의 삶이며 은혜를 은혜답게 바로 받는 것이라고 요한 계시록에서 칭찬 받은 두 교회를 통하여 증거 해 주고 있다.

 

따라서 말세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라고 하는 것처럼 요한 계시록을 통하여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고 하시는 주님의 외침에 순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