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은 창세기 22장 2-14절 말씀으로 먼저 어제 주신 “그런데 여수룬이 기름지매 발로 찼도다 네가 살찌고 비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업신여겼도다” 라는 말씀은
‘의로운 자’, ‘사랑하는 자’, ‘훌륭한 자’, ‘경건한 자’ 란 의미의 여수룬이 되어도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업신여기는 것이 우리 인간이라고 하시며 그런 우리들의 길이 되기 위하여
하나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을 대신하여 율법으로 의롭고 순결하고 착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온전한 모습이 되신 후 그것을 믿음과 은혜로 받아 누리면 그것을 우리의 의와 순결로 인정해 주겠다고 하심에도 불구하고
불의와 불법의 목교세들이 이루 말로 다 형언할 수 없는 그 고귀하고 소중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사역을 왜곡, 변질하여 미혹함으로 온 땅에 사랑이 넘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사랑의 이름으로 사랑을 죽여 그저 온 땅에 사랑의 시체들로 인하여 악취와 시끄러운 꽹과리 소리만 진동을 하고 있다고 하시며
정말 말세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죄의 권세 속에서 위로를 받으며 소망을 가지고 끝까지 견디어 최후 승리를 소유할 수 있도록 주신 지침서인 요한 계시록의 말씀까지 이런 저런 이유로 금기하던지 아니면 자신들의 배를 채우는 도구로 사용하기 위하여 말씀의 본질을 왜곡 변질하여
구약시대에는 우리 스스로 통과하여 구원을 이룰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도구로 주셨지만 이제는 이미 빈 껍질이 되어버린 제사(형식적인 예배), 성전(교회), 제사장(목사), 십일조, 율법(착하고, 구별된 순결한 삶)을 비롯하여 이 세상이 요구하는 섬김과 나눔과 사랑에 매달리는 고난을 요구하는 삶은 오히려 하나님의 그 크고 놀라운 사역을 폄하하는 것으로
에베소서 4장에 말하는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절대로 갈 수 없을 뿐 아니라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 이 말세의 기간을 견디어 승리하기에는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불가능의 도전으로 이를 극복하는 비밀이 바로 구약시대와 신약시대, 천국과 이 세상을 분별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받아 누리며 서로 사랑하는 천제증인의 삶을 사는 것이라고 하시며
오늘도 보여주시고 들려주시는 말씀 중에서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 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묵상해 보자
오늘 본문은 너무나 유명한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그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숫양을 아들 대신에 드리게 한 사건으로
하나님께서는 이를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보시고 복을 주며 또 인간들 편에서는 이를 여호와 이레 라고 한다고 하는 말씀이다.
이를 좀 더 냉정하게 바라보면 결국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복 주기 위한 자작극이고 아브라함은 오히려 하나님께 배를 내밀고 배를 째라고 한 것으로 이것이 바로 믿음의 실체요 본질 아닌가?
이렇게 믿음의 실체와 본질을 보여주신 후 하나님께서 또 하나의 대형 자작극으로 우리 인생이 복을 받는 길과 진리와 생명 즉 당신 자신을 여호와 이레로 준비하시고
2008년 마지막 날인 오늘 우리들이 정말 하나님을 믿는다면 당신께서 미리 준비하신 여호와 이레 인 십자가의 부활을 믿고 이제는 그가 아니라 너 자신을 번제로 드리라고 요청하고 있다.
그런데 목교세들이 앞장서서 믿음을 이 세상의 잣대로 확인을 하려고 하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다는 것이 오히려 이 세상을 믿고 따르는 것이 되도록 미혹하여 자신들의 배만 채우고 있다.
따라서 우리 조각바람 지체들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 인생의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확실하게 믿어 자신의 편의에 따라 본질을 왜곡. 변질하여 미혹하고 있는 불의와 불법의 목교세들과 연합한 이 세상의 유혹과 위협이 아무리 사실과 현실처럼 그리고 태산처럼 밀려와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고
또 아무리 진짜라고 큰소리 쳐도 죽음 앞에는 무용지물인 부부나 자식이나 부모나 이 세상의 그 어떤 관계보다 특별한 관계인 또 다른 나인 지체들과 이미 혼인잔치의 주인공으로 확정되어 기다리고 있는 새로운 나를 바라보고
종말을 소망하며 담대하게 누리고 즐기는 천제증인의 삶을 사랑의 속삭임으로 확인하고 감사하며 사랑함으로 행복해 하는 신나는 오늘이 되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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