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속담에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이 있는데 사전적 의미로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사랑하기는 하여도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사랑하기는 좀처럼 어렵다는 것으로 결국 이런 모양이 우리의 현실임을 거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인지 성경에서도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고 강요하면서 내리사랑이 아니라 치사랑과 수평사랑을 강요할 뿐 아니라
유교에서도 인간이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세가지 근본과 다섯 가지 도리 즉 삼강오륜을 인간의 근본도리로 강요하므로 결국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 우리 인간이 반드시 지켜야 할 근본 도리는 윤리와 도덕이라고 강요하면서 내리사랑이 아니라 치사랑과 수평사랑을 강요하는 것은
강력한 믿음과 신뢰의 표상으로 알고 있는 충과 효과 순결과 의리 등은 본능이 아니라 오히려 여호와께서 주신 근본 본능인 피조물이 한계를 극복하여 온전한 평안인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정답인 복음을 깨닫게 하기 위하여 주신 이상과 감성을 소멸하고
부족한 피조물의 이성과 감성을 따라 외모인 공평 타당함의 논리로 판단한 이 세상 선생들의 논리나 주장을 따라 여호와께서 주신 근본 본능인 이성과 감성을 소멸하고 이 세상이나 자신들이 원하는 이성과 감성을 본능처럼 미혹하여 세뇌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려고 강력하게 요구하는 것으로
결국 이를 위하여 성경에서도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고 하면서 충성과 순종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지만 그것이 정말 구원의 기본 조건이나 자격이 되기 때문도 아니고
또 우리 인간을 비롯하여 모든 동물의 내리사랑으로 본능처럼 착각하고 있는 모성애나 부성애는 창조주인 여호와께서 주신 본능인 이성과 감성을 온전함의 논리로 판단하여 회개를 하는데 사용하기보다 외모인 공평 타당함의 논리로 판단하여 스스로 영생불멸의 구원을 이루기 위한 불가능에 도전할 때 나타나는 현상인 신기루이기에 어떤 교육이나 노력 없이도 본능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위에서 말한 것처럼 세뇌되어 왜곡되었다는 본능들이 사실이 아니라 진짜 본능인 참이라면 근본적으로 정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는 사실도 바로 알아야 하는데 그것은 온전하신 여호와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마지막 여섯째 날 사람을 창조하시고 심히 좋았더라고 흡족해 하신 피조물의 패륜은 본능이 아니니 그래도 이해가 되지만
여호와께서 주신 본능으로 알고 있는 모성애나 부성애를 거부하며 자녀를 버리거나 죽이는 비정한 부모가 동물의 세계는 물론 인간 세상에도 일어난다는 사실은 과연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것일까?
뿐만 아니라 그 모든 것이 부족한 피조물의 작품이라면 그래도 억지로 이해는 할 수 있지만 만약 온전하신 여호와의 작품이라면 온전하신 여호와의 성품과 속성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여 스스로 온전하신 여호와가 아님을 반증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리사랑과 치사랑은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나 우리 인간이 반드시 지켜야 할 근본 도리가 아니라 피조물 스스로 온전하지 못한 피조물의 본질인 한계를 극복하여 여호와처럼 영생불멸을 소유함으로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인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누리기 위한 발악으로
결국 이성과 감성을 따라 외모인 공평 타당함의 논리로 판단하여 내가 영원히 사는 방법으로 자녀를 낳아 대를 이어가지만 실제적인 내 생명이 부모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자녀에게 있는 것으로 판단하기에 모성애니 부성애니 하는 내리 사랑은 당연히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일 뿐 아니라
치사랑은 충과 효과 의리를 비롯하여 순결과 순종을 강요하는 교육으로 의미를 부여하며 효자, 효녀, 효부, 열녀 등 여러 가지 이름의 달콤한 유혹으로 신기루인 바람을 잡으라고 그렇게 강요함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는 물론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절대 불가능의 도전인 신기루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비정한 부모가 일어나는 것은 지금까지 참인 본능으로 알고 있는 모성애와 부성애가 참이 아니라 스스로 피조물의 한계를 극복하여 영생불멸의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 위한 도구였음을 반증하고 있는 것으로 바로 알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구인 모성애와 부성애를 비롯하여 충과 효를 도구가 아니라 본능인 참으로 착각하여 충성과 순종을 정답처럼 미혹하는 유혹에 세뇌되어 따르려고 발악하고 있는 것은 참인 복음의 무지로 온전한 정답을 알지 못하는 종교를 비롯하여
이 세상의 모든 선생들이 헛되고 헛된 신기루인 부족한 피조물의 이성과 감성을 따라 외모인 공평 타당함의 논리로 판단하여 회개를 하기보다 스스로 참인 구원을 이루기 위한 불가능의 도전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하기 위하여 끝없이 미혹하여 세뇌하는 교육으로 참을 가리는 불의와 불법의 똥칠이 됨으로 바로 알 때
태초부터 감추인 신비처럼 보이는 여호와의 뜻을 따라 회개함으로 피조물이 영생불멸의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변화의 신비인 복음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이 세상이 절대로 줄 수 없는 온전한 편안인 자유와 행복을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은 위에 있어도 수면 위를 운행하시는 여호와처럼 영원히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생이란 남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가 아니면 자신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가? (0) | 2013.06.04 |
---|---|
깨달음의 실체 (0) | 2013.06.03 |
자살(自殺)의 실체 (0) | 2013.06.01 |
복음의 실체(태초부터 감추인 신비) (0) | 2013.05.30 |
실삶큐티 사랑의 속삭임이란? (0) | 2013.05.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