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덕이란 피조물의 부족한 이성과 감성을 따라 외모인 공평 타당함의 논리로 판단한 아름답고 갸륵한 덕행을 말하는 것으로 이는 결국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달콤한 신기루 유혹의 명분과, 온갖 감언이설과 권수술수가 난무하는 표리부동의 모습으로
위협하고 협박하는 무례함으로 교육하고 훈련하여 괴물로 만들어 피조물 스스로 만든 신기루 도덕천을 따른 도덕적, 윤리적 이상을 실현해 나가는 능력을 덕이라고 하고 이 덕을 잘 펼치는 것을 어질고 너그러운 행실이라 하여 선행을 한다고 말하는 것이고
악덕이란 미덕과 반대되는 의미로 신기루인 바람을 잡으려고 피조물 스스로 만든 도덕천을 따른 윤리와 도덕에 어긋나는 행실로 결국 스스로 만든 신기루 도덕천을 따른 도덕적, 윤리적 이상의 실현을 가로막는 것을 나쁜 마음이라 하여 악덕이나 악행으로 표현함으로
미덕과 악덕을 분별하여 스스로 만든 신기루인 도덕천을 표적으로 구하는 것을 정답으로 미혹하여 세뇌함으로 바람을 잡으라는 절대 불가능의 도전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불교의 논리인 중도를 보면 선악을 분별하지 않는 것처럼 미덕과 악덕을 분별하지 말아야 할 뿐 아니라 유교에서도 수신제가치국평천하 하기 위하여 중용인 과유불급이라 하여 미덕도 아니고 악덕도 아니어야 하고, 기독교에서도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고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종교를 비롯하여 헛되고 헛된 신기루인 이 세상은 한결같이 신기루 미덕을 정답처럼 찬양하고, 악덕을 오답처럼 배척하고 있으니 이것은 종교에서 대자대비니, 사랑이니, 은혜니 하는 이론과 실삶이 서로 모순되는 이상한 현상일 뿐 아니라
미덕과 악덕의 분별하는 도덕천의 잣대도 과연 정의의 여신으로 대표되는 우리 스스로 만든 법처럼 헛되고 헛된 신기루인 바람을 잡으려는 절대 불가능의 도전이 아니라 언제나 온전하고 완벽한 불변의 정답일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 때는 절약이 미덕이라고 국산품애용이나 국민교육헌장처럼 신기루인 바람을 잡도록 그렇게 강요하더니 요즘은 소비가 미덕이라고 조장하며 강요하고 있으니 관연 무엇이 미덕이고 정답이란 말인가
뿐만 아니라 소비나 절약을 비롯하여 인구 등 이 세상의 정책이나 법을 비롯하여 구약과 신약 등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계 각층의 대단한 선생들이 말하는 정책이나 법을 비롯하여 종교까지 그 본질이 왔다 갔다 한다면 우리는 과연 무엇을 미덕이나 정답으로 해야 하는 것일까
이처럼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정답이 없이 신기루인 바람을 잡으려는 절대 불가능의 도전이기에 지혜의 왕 솔로몬은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 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고 하면서 결국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는 것으로 바로 알 때
미덕과 악덕이 다른 것이 아니라 똑 같은 덕이라 표현한 것을 피조물의 부족한 이성과 감성을 따라 외모인 공평 타당함의 논리로 판단하여 헛되고 헛된 신기루인 이 세상의 요구를 따라 신기루인 바람을 잡기 위하여
타자를 위한 덕을 미덕이라 하고, 나를 위한 덕을 악덕이라 하여 도덕천을 따라 헛되고 헛된 신기루인 이 세상을 표적으로 구하도록 미혹하는 것이기에 덕의 본질부터 바로 알아야 하는데
덕이란 교육과 훈련으로 미혹되어 세뇌된 스스로 만든 신기루 도덕천을 따라 도덕과 윤리의 이상을 펼치는 괴물의 이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주신 이성과 감성을 따라 피조물의 한계를 극복하여 영생불멸의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라는 온전하신 여호와의 뜻을 따른 이상을 펼치는 것으로 바로 안다면
오히려 나를 위하여 행하는 덕은 정직한 미덕이 되고, 타자를 위하여 행하는 덕은 헛되고 헛된 신기루인 이 세상의 요구를 따라 신기루인 바람을 잡기 위하여 절대 불가능에 도전하는 온갖 감언이설과 권수술수가 난무하는 표리부동의 모습인 악덕이 됨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태초부터 감추인 신비처럼 보이는 여호와의 뜻을 따라 회개함으로 피조물이 영생불멸의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변화의 신비인 복음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이 세상이 절대로 줄 수 없는 온전한 편안인 자유와 행복을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은 위에” 있어도 수면 위를 운행하시는 여호와처럼 서로 사랑함으로 실삶으로 확인하며 영원히 누리는 것이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신기루 믿음이나, 교육, 훈련 등으로 미혹하여 세뇌함으로 죽음에 대한 억울함이나 두려움을 따른 불안함인 피조물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신기루인 덕이란 이름으로 미덕과 악덕을 분별하므로 복음의 본질을 왜곡 변질하는 등 온갖 감언이설과 권수술수가 난무하는 표리부동의 모습으로 그렇게 갈망하며 찾고 또 찾으려고 발악한 정답으로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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