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속삭임 낙서장

플라톤의 이데아와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부동의 원동자 논리의 한계

패스라 2014. 12. 3. 07:35

이 세상의 허망한 신기루 유익인 똥을 위하여

감탄고토의 온전하지 못한 피조물의 본능과 본질을 따라

온전함보다 온전하지 못한

 

피조물의 이성과 감성이 경험하는

자기 중심적인 의식과 무의식 세계인

마음과 생각을 정답으로 심각하게 착각하듯이

 

위 없이 살아있는 온전한 복음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은 위에 있어도

수면 위를 운행한다고 표현하는 위 없이 살아있는

온전한 무심과 무관심의 관계와 모습인 온전한 무위나

온전한 유심과 유관심의 관계와 모습인 온전한 유위를 두고

 

철학자 플라톤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헛되고 헛된 허망한 신기루란 지혜의 왕 솔로몬이나

인연을 따라 연기함으로 실체가 없는 공이란 붓다처럼

가짜이기에 그 어디엔가 분명하게 존재할 참다운 존재인 원본을

이데아라 명명했지만 현실 적용에 문제가 발생하자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좀더 보완된 논리인 부동의 원동자 즉 존재만 하는 이데아가 아니라

그를 닮도록 하는 추동력을 제공하는 이데아의 개념을 주장하여

창조주와 피조물의 기독교 사상을 설명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모든 존재는 원본과 닮으려고 노력하지만

절대로 원본이 될 수 없다고 하는 논리를 따라 

창조주와 피조물을 분별하는 멋진 도구는 되지만

 

피조물의 한계를 영원히 극복할 수 없는

종교의 한계에 부딪치게 됨에도 불구하고

종교를 정답으로 심각하게 착각하여 표적으로 구하므로

 

그 결과는 언제나

다람쥐 쳇바퀴나, 절대 불가능의 도전으로

어느 날 홀연히 인생 무상을 읊조리며

허공 속으로 흩어지며 사라져가는 실패자가 됨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한다.

 

따라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난 만고의 영웅호걸은

과거나 주변이나 환경에 미혹되어

분별하기 위하여 몸부림치기보다

각자 자신의 살아있는 길로만 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