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소재의 예물에 대하여 말씀을 하시면서 기름과 유향과 소금은 사용하고 누룩이나 꿀은 사용을 하면 안 된다고 하신다.
그 당시 제사의 소재물에도 사용하는 것과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있었다면 지금의 예물인 우리의 온 삶에도 함께 드릴 수 있는 것이 있고 드리면 안 되는 것이 있다는 말인데 오늘날의 기름과 유향과 소금과 누룩과 꿀은 무엇일까?
어쩌면 그 하나 하나를 세분하여 구별하여 제도화, 정형화 하려는 것 자체가 불필요하고 무의미한 것 같다. 신약의 시대인 지금에는
참! 그리고 보니 어제 저녁의 라일락과 친구, 그리고 이웃의 한 사람과의 대화가 생각난다.
한 사람이 당원으로서 국회 조찬기도회에 다녀 왔는데 함께 간 사람이 만원을 헌금 하라고 하여 어쩔 수 없이 했는데 아침 한끼를 만원에 먹었다며 아까워 했다.
그리고 나에게 질문을 했다. 십일조를 하느냐고 , 또 교회에서 그래도 양심적으로 십일조를 내는 사람이 10%로 안된다고 하는데 사실이냐고 하여 그럴 것이다. 사실 교회는 그 10%가 이끌어 가고 있다고 했더니
또 어떻게 아까워 십일조를 하느냐고 물어왔다.
그러자 라일락도 우리 할머니는 수입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십일조를 내기 위하여 무리를 하는 것이 오히려 주변 사람에게 교회로의 발걸음을 방해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십일조에 대하여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 교회에서 말하는 십일조는 편법이고 불법이다.
구약시대에는 십일조가 하나님의 명령으로 우리들의 의무 사항이 되었지만
지금은 십일조가 아니라 십의 십 즉 전부가 다 드려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우리들의 죄를 없게 해 주시고 하나님 과의 사이를 가로막던 휘장을 찌져버려 이제는 언제나 어디서나 자유롭게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독자적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으며 십의 일로는 절대 부족하다.
그런데 왜 교회에서 십일조를 강조할까?
첫째로, 보기에 따라 인간들이 전부와 전무를 구별하기 불가능이다. 오직 하나님 만이 아시기 때문에 전부를 해도 별로 생색이 나지 않는다.
둘째로, 한 교회에서 십일조를 어느 정도 바로 하는 비율이 10%로 안되므로 자연히 기득권도 생기고 교회를 움직이므로 이에 따라 신앙도 정비례한 것으로 착각에 빠져있다.
셋째로, 첫번째 와는 달리 십일조는 우리 스스로 하는지 안 하는지 구별하여 판단할 수 있으므로 십일조가 하나님과 연결되는 동아줄로 생각하여 라일락 할머니처럼 무리를 하여 죽을 때까지 십일조의 끈을 놓치 못하도록 삯꾼 목사들이 세뇌를 시켜놓고 자신들의 배를 채우고 있다.
따라서 교회는 절대로 특별한 장소가 아니다. 오히려 없어져야 할 타도의 대상으로 바뀌어 가는 교회와 목사들은 정직하게 자신을 돌아보고 변질된 교회와 교회 문화를 다 쓸어 버려야 한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들의 예물에 포함되어 있는 누룩과 꿀을 제하기 위하여 오늘도 우리 조각바람 식구들은 사랑의 속삭임으로 신나고 즐거운 승리자의 삶을 누려야겠다.
민들레를 비롯하여 우리모두 소망의 하나님을 바라보고 오늘 모임과 각자에게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며 누려 봅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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