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생각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

패스라 2008. 10. 4. 12:50

오늘 하나님께서 주시는 요한일서 2장 1-11절의 말씀은

 

어제 하나님께서 주신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라는 말씀은

 

이 세상에 정의를 구현하고 섬김과 나눔으로 더불어 잘 사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그것이 우리 크리스천들의 사명이고 인생의 목적이라고 하면서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또는 큰 교회를 짓고 사람들을 모아

 

자신들의 배를 채우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목교세들의 말은 본질을 왜곡하고 변질한 말로서 그저 이 세상을 미혹할 뿐 그것이 하나님의 뜻도 아니고 또 에베소서 4장에 말하는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갈 수 없다고 하시면서

 

우리 조각바람 지체들도 하나님을 교묘하게 빙자하는 불신의 모습으로 괜히 불가능에 도전하기보다 깨어 천제 증인의 삶을 누리기 위하여 사랑의 속삭임을 멈추지 않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해 지는 것이라고 하시며

 

이를 위하여 우리는 어떤 부분에서도 온전함(이것만은 절대로 라는 것)을 주장할 것이 없는 피조물임을 인정하는 것이 바로 불가능에 도전하는 큰 착각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사역을 온전히 인정하는 첫걸음이라고 하신 후

 

이를 위하여 오늘 보여 주시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라는 말씀을 묵상해 보자

 

주시는 모든 말씀이 참으로 놀랍고 감사하며 더욱더 힘을 내어 조각바람으로 천제증인의 삶에 도전 할 수 밖에 없도록 하는 말씀이다.

 

그래서 다시 나의 말로 바꾸어 본다.

이 말씀은 우리로 다시 범죄 함으로 넘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하는 말이니 잘 들어라

 

하나님께서 우리들이 스스로 살수 있는 길인 율법을 주었지만 그 길은 우리 피조물로서는 절대로 갈수 없이 길이라 우리들이 넘어 질 때마다 그 사실을 하나님께 대언해 주시던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공의와 우리들을 위하여 스스로 율법과 그 열매와 통과하는 길이 되시므로 우리 인생이 살수 있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셨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그의 계명인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하면 우리들이 율법을 온전하게 통과한 것으로 인정해 주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 했다고 하면서 다시 율법을 지키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결국 진리이신 예수를 소유하지 못한 자인 것이다.

 

따라서 예수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대로 따라 행해야지 그렇지 않고 율법을 따라 행하는 것은 예수를 부인하는 것이 된다.

 

그리고 이 말은 세 계명이 아니라 옛 계명이 말하는 바를 온전하게 행한 것이지만 옛 계명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이를 그냥 새 계명으로 받아라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과 우리에게 참된 것으로 어두움은 지나가고 참 빛이 미리 비취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미 참 빛(구원) 가운데 있다고 하면서도 아직도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아직도)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이다. 정말로 빛 가운데 있는 자는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이 무엇이던지 다 할 수 있는 자이므로 형제를 판단하거나 미워하가나 시기할 이유가 없다. 왠냐하면 조금만 기다려 주면 될뿐 아니라 또한 그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말씀은 지금 우리 조각바람에서 훈련하고 있는 말이 아닌가? 그래서 오늘은 두 가지만 다시 한번 점검하고자 한다.

 

하나, 율법의 계명은 지키는 것이고 그의 계명인 예수님의 계명은 누리는 것이다.

 

, 형제를 미워하는 자란 형제를 비교, 판단하는 자일뿐 아니라 자신이 쌓아올린 이 세상의 자랑인 아무리 착하고 거룩한 모양의 바벨탑이라도 이를 유지하고 자랑하기 위하여 형제를 도구로 이용하는 비겁한 자이다.

 

따라서 우리 조각바람 지체들은 날마다 우리에게 밀려오는 희로애락의 제목들을 편식하지 않고 누릴 수 있는 것이 우리 자신의 수양이나, 남보다 많이 가짐이나, 의로움이나, 정의로움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조건에 상관없이 은혜로 우리의 구원을 확증해 주셨기 때문임을 꼭 명심하고 오늘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고 담대하게 멋진 하루로 신나게 누리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