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구부러진 것도 곧게 할 수 없고 모자란 것도 셀 수 없도다”고 하면서 그래서 이 세상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고 선언하는 지혜의 왕 솔로몬의 고백처럼
헛되고 헛된 신기루인 이 세상에서 온전한 평안인 자유와 행복을 소유하기 위하여 온전함의 논리로 판단하여 여호와께서 주신 이성과 감성으로 회개를 하기보다 스스로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외모인 공평 타당함의 논리로 판단하여 요구하는 충성과 순종의 헌신과 희생으로
여호와께서 주신 이성과 감성을 소멸함으로 괴물을 만드는 것 같은 주입식 교육의 한계를 발견하고 그 대안으로 대세처럼 떠오른 자기주도 학습이란 결국 공부하는 주체인 자신이 자신의 공부를 하도록 하자는 참으로 멋진 대안이다.
왜냐하면 자기 주도 학습의 목적은 자기 주도의 교육으로 자기 주도의 인생을 살게 함으로 자신의 행복을 스스로 소유하도록 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의 실삶은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외모인 방법만 달리 했을 뿐 그 목적은 자기 주도의 삶이 아니라 좀더 신속하고 정확하게 마음에 흡족한 괴물을 만드는 표리부동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부모나 이 세상이 자신들이 아니라 정말 자녀 자신을 위하여 자녀의 주도권을 인정한다면 정답도 아닌 신기루인 공부로 자녀를 평가하기 위하여 정부와 연합하여 죽음으로 내몰기보다 자기 주도의 삶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더욱더 모든 분야에서 점점 더 자녀의 주도권을 인정하며 확장해 주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헌법 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으로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고 분명하게 명시하여 국민의 주도권을 인정하는 척 하면서도 자녀를 위한다는 실삶이 아닌 명분의 이름으로 부모가 자녀를 정답이 아닌 명분으로 통제하듯이
먼저 요구하지도 않았고 또 절대로 감당할 수도 없는 개인의 건강이나 행복을 담보로 주객을 전도하여 정답이 아닌 신기루인 명분으로 지난친 관섭과 통제를 함으로 오히려 개인의 인권을 침해함으로 화를 나게 할 뿐 아니라 그것이 알고 싶다 이별살인 편에서 보여준 것처럼
정부가 자기 주도의 결혼을 가능하면 인정하려고 한 것처럼 자기 주도의 이혼도 가능하면 인정하려고 해야지 정답이 아니기에 분명하거나 정확하지도 않는 명분으로 인정하지 않기 위하여 정답이 아닌 신기루인 명분으로 법을 만들어 강제로 통제함으로
개인의 인권 침해는 물론 더 극심한 고통과 죽음 속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 바로 부족한 피조물의 이성과 감성을 따라 외모인 공평 타당함의 논리로 판단한 신기루 명분을 표적으로 구함에 따른 실상으로 결국 불가능에 도전하고 있는 권모술수의 표리부동한 모습으로 인하여 오히려 인면수심의 범죄를 유발하고 있는 것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 때
제대로 된 자기 주도 학습으로 실삶을 살게 했다면 현실에서 확인되고 있는 것처럼 정답이 아니라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표리부동의 이 세상과 부모가 신기루인 명분을 위하여 연합하여 만든 성인은 무죄가 되고 미성년은 유죄가 되는 음주, 흡연을 비롯하여 자신의 성 결정권의 신기루 죄짐으로 인한 표리부동의 모습에서 자유함으로 당당해지거나
또 부모나 목사나 사모를 비롯하여 이 세상의 선생들이 정답이 아니라 자신들의 신기루 명분을 위하여 스스로 만든 그 명분을 정답처럼 표적으로 구하기 위하여 취하고 있는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표리부동의 야비한 모습에서 자유함으로 당당해진다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망우보뢰의 속담처럼 사건이 일어난 후에 후회하기보다 절대로 원하지 않는 극심한 고통인 인면수심의 범죄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신기루인 인연의 연결고리에 의미를 부여하며 신기루 행복을 잡으려는 것은 절대 불가능의 도전으로 바로 알게 될 것이다.
따라서 회개함으로 피조물의 궁극적인 목적과 사명인 영생불멸의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이 세상이 절대로 줄 수 없는 평안인 자유와 행복을 누리기보다 스스로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부족한 피조물의 이성과 감성을 따라 외모인 공평 타당함의 논리로 판단하여
대단한 부모나 선생들이 되기 위하여 스스로를 속이는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표리부동의 헛되고 헛된 절대 불가능의 도전인 종교를 비롯하여 이 세상의 모든 주장이나 논리는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고 하는 것처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는 그림이나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는 그림처럼 깨닫지 못하고 정답이 아니라 신기루 명분으로 나팔과 꽹과리 소리를 울리지만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는 그림처럼 아무리 발악을 해도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는 그림처럼 그 결국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는 그림이나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는 그림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질 헛되고 헛된 신기루 명분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태초부터 감추인 신비처럼 보이는 여호와의 뜻을 따라 회개함으로 피조물이 영생불멸의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변화의 신비인 복음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이 세상이 절대로 줄 수 없는 온전한 편안인 자유와 행복을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은 위에 있어도 수면 위를 운행하시는 여호와처럼 영원히 누리는 것이 복으로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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