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성령 충만의 실체

패스라 2013. 6. 12. 09:07

성령 충만이란 여호와의 영이 충만하다는 것으로 부족한 피조물의 이성과 감성을 따라 외모인 공평 타당함의 논리로 판단하기보다 여호와처럼 공의인 온전함의 논리를 따라 판단하여 행동한다는 것으로

 

결국 태초부터 감추인 것처럼 보이는 여호와의 뜻을 따라 회개함으로 복음으로 영생불멸의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은 위에 있어도 수면 위를 운행하시는 것처럼 온전한 평안인 자유와 행복을 누리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온전한 평안인 자유와 행복을 누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 위하여 연기나 인연 법을 따른 불교에서는 생로병사 고락의 윤회에서 해탈한 새로운 피조물인 성불을 갈망하여 축복의 인사나 구호처럼 성불하라고 부르짖고 있는 것처럼

 

상상의 용을 그리듯이 여호와로 그린 하나님과 예수를 그 하나님의 아들로 착각하여 미혹함으로 그들을 표적으로 구하고 있는 기독교에서는 어색하기만 하고 실체가 없는 삼위일체의 논리를 정답처럼 착각하여 입으로는 불교인들의 성불보다 더 열정적으로

 

금식이나 나무 뿌리를 뽑는 열정으로 성령충만을 축복의 인사나 구호처럼 부르짖고 있지만 그 실상이나 실삶은 여호와처럼 온전한 평안인 자유와 행복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는 그림처럼 갈급함과 불안함으로 구하고 있는 표적의 종이나 죄인으로 전락하고 있으니

 

이를 바로 분별하기 위하여 먼저 성경에서 보여주는 성령 충만의 실상을 보면 마리아처럼 처녀가 잉태를 하든지, 세례 요한처럼 주의 길을 평탄게 하는 종이 되든지, 복중의 요한처럼 하나님의 아들을 분별하여 선포하거나, 요한의 부친 사가랴처럼 주의 일을 분별하여 예언하거나, 예수처럼 광야에서 사십일 동안 마귀의 시험을 받거나,

 

오순절의 제자들이나 바울처럼 방언을 하거나, 예수의 이름으로 병 고침을 비롯하여 퇴마사가 되든지, 종교를 만들든지, 스데반처럼 담대하게 순교를 기쁨으로 하는 것을 성령충만으로 미혹하여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고 강요하며

 

이를 다시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고 하는 것처럼 구원이 아니라 세상의 성공을 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구원처럼 의미를 부여하며 강조한 후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충성과 순종의 헌신과 희생으로 괴물이 되라고 강요함으로

 

결국 피조물의 부족한 이성과 감성을 따라 외모인 공평 타당함으로 판단하여 여호와께서 주신 이성과 감성의 온전한 조화를 이룸으로 구원을 이루기보다 오히려 소멸하며 이 세상이 원하는 이성과 감성으로 세뇌하여 괴물이 된 것을 성불한 것처럼 성령 충만이라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불교의 성불은 신기루이지만 그래도 온전한 평안인 자유와 행복을 표적으로 구하고 있지만 기독교의 성령 충만은 스스로 온전해 지는 것이 아니라 신부가 없으면 의미가 없어지는 들러리처럼 표적의 들러리이기에 결국 주 예수 안에 있기 위한 발악일 뿐 아니라

 

따라서 성령의 은사나 열매로 미혹하고 있는 방언이나 병 고침을 비롯하여 목사, 장로 등은 우리들의 실삶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돈과 명예와 권력 등 이 세상의 성공을 위해서는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여 성공함으로 대단한 선생들이 되어 부러움과 함께 칭송을 받고 있는 괴물들처럼 

 

여호와를 빙자하여 헛되고 헛된 신기루인 이 세상의 성공을 잡으려는 절대 불가능의 도전인 괴물들의 부르짖음으로 여호와의 뜻인 복음과는 전혀 무관한 것으로 바로 알 때 반갑고 기쁜 소식은 성경에는 괴물이 되어 그런 신기루인 바람을 잡는 성령만 강조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요한복음 14장부터 예수님이 말하는 성령인 보혜사는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고 하는 것처럼 주객이 전도되어 우리들이 성령 충만을 영원토록 갈망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 스스로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있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여호와와 그의 영인 성령은 참인 진리라 헛되고 헛된 신기루로 피조된 우리 피조물과 이 세상은 그 본질상 절대로 참인 온전한 여호와나 그의 영인 성령을 부족한 피조물의 이성과 감성을 따라

 

외모인 공평 타당함의 논리로 판단하면 절대로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보거나 확인 할 수도 없고 또 감당할 수도 없기 때문이라고 분명하게 선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고 하면서 예수를 빙자하여 상상의 용을 그리듯이 본질을 살짝 미혹하여 앞뒤가 맞지 않는 내용으로 자신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함으로 표적을 구하는 종교를 만들어 참을 가리는 불의와 불법의 똥칠을 할 뿐 아니라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라고 불의와 불법의 똥칠을 참인 사실로 미혹하고 있지만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고 하는 것처럼

 

태초부터 감추인 것처럼 보이는 신비로 여호와의 뜻인 복음은 참이라 위의 설명처럼 성령님의 도움 없이는 온전한 설명이나 깨달음이 절대 불가하여 예수께서도 스스로 비유로 밖에 설명할 수 없었음을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고 한 사실을 바로 알 때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15장에서 거듭하여 성령의 역할을 분명하게 정의하자 표적을 구하는 그들도 역시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언하느니라고 예수를 빙자하여 자신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만

 

16장에서 다시 분명하게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고 정의하는 성령의 역할은

 

바울을 비롯하여 신기루인 바람을 잡으려고 표적을 구하는 베드로 등 제자들의 논리나 주장에 미혹되어 모든 크리스천들이 표적처럼 갈망하며 부르짖는 신기루 성령 충만인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는 것처럼 괴물의 능력이나 권능을 주어 신기루인 바람을 잡으려는 불가능에 도전하라는 것이 아니라

 

지혜의 왕 솔로몬의 고백이나. 제법 실상은 공 하다는 불교의 깨달음이나, 우리들의 실삶을 통하여 확인하고 있는 것처럼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야비한 표리부동의 헛되고 헛된 신기루임을 깨달아 스스로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신기루인 바람을 잡으려는 절대 불가능에 도전하기보다

 

태초부터 감추인 신비처럼 보이는 여호와의 뜻을 따라 회개함으로 피조물이 영생불멸의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변화의 신비인 복음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이 세상이 절대로 줄 수 없는 온전한 편안인 자유와 행복을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은 위에 있어도 수면 위를 운행하시는 여호와처럼 영원히 누리는 것으로 바로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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