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억울함의 실체

패스라 2013. 6. 24. 08:00

억울함이란 누명이나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일이 일어나 스스로 판단하기에 아무 잘못 없이 꾸중을 듣거나, 손해를 보거나, 벌을 받아 화나고 분하여 짜증과 원망과 울분을 비롯하여 후회나 외로움 등 피해의식이 생기는 극도의 스트레스를 동반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정치, 경제, 사화, 문화, 종교 등 이 세상은 대단한 선생들은 저마다 그런 억울함이 없는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흐르는 행복한 세상을 만들겠다고 법을 만들며 온갖 달콤한 유혹과 협박의 나팔과 꽹과리 소리로 미혹하며 열심히 달려왔지만 아직도 미완인 것은 그 자체가 절대 불가능의 도전임을 반증하는 것일 뿐 아니라 

 

결국 지금까지 확인한 것처럼 우리 피조물의 부족한 이성과 감성을 따라 외모인 공평 타당함의 논리로 판단한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법이나 그 어떤 달콤한 유혹과 협박으로는 꿈꾸는 그런 세상이 절대 불가능 하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치를 비롯하여 종교나 이 세상 선생들은 그들이 만든 신기루 법이나 주장을 정답처럼 미혹하여 세뇌함으로 충성과 순종의 이름으로 헌신과 희생을 강요하여 괴물로 만들어 절대 불가능에 도전하게 함으로 자신들의 배를 채우기 위하여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고 할 뿐 아니라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는 달콤한 유혹과 협박으로 절대 불가능의 도전을 강요함으로

 

헛되고 헛된 신기루인 이 세상에서 온갖 권모술수를 동원한 표리부동의 모습을 취하게 하여 결국 세월이 흐름을 따라 억울함의 요소가 점점 과중 됨으로 인하여 육신의 생로병사 고락에 정신적인 억울함의 스트레스가 쌓이고 쌓여 우울증을 비롯하여 온갖 질병을 더 빨리 부르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바로 알 때

 

이런 고약한 억울함의 스트레스에 대하여 자유 하는 정답은 피조물의 부족한 이성과 감성을 따라 외모인 공평 타당함의 판단하여 신기루인 바람을 잡으려는 헛되고 헛된 불가능의 도전을 계속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억울함의 실체는 바로 아는 것이다.

 

따라서 먼저 온전함의 논리로 억울함을 보면 결국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를 비롯하여 이 세상의 선생들에게 미혹되어 예상이나 상상조차 하기 싫은 저주나 벌로 알고 있는 최악의 상황은 동과 서처럼 가능한 한 멀리 떨어져 나와는 상관없는 것으로 외면하기 위하여

 

종교나, 그들 선생들의 말을 믿고 그들을 의지하여 살고 있는 나에게는 당연히 아니 절대로 일어나지 않아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의사나, 일어나야 분명한 조건이나, 환경에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지혜의 왕 솔로몬의 고백이나 예수의 주장처럼 이 세상은 모든 것이 다 헛되고 헛된 신기임을 실삶으로 확인하고 회개를 하는 순간 일어나야 할 일도, 일어나지 않아야 일도 다 헛되고 헛된 신기루이기에

 

불교에서 말하는 여여처럼 그냥 지나가게 해야 할 의미 없는 일이지 잡고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의미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 억울함은 실체도 헛되고 헛된 신기루로 바로 알아야 하고

 

또 아직은 피조물의 옷을 입고 있기에 서로 발을 씻기며 서로 사랑함으로 신기루인 억울함의 시시비비를 가리려는 불가능에 도전하기보다 태초부터 감추인 신비처럼 보이는 여호와의 뜻을 따라 회개함으로 피조물이 영생불멸의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변화의 신비인 복음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이 세상이 절대로 줄 수 없는 온전한 편안인 자유와 행복을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은 위에 있어도 수면 위를 운행하시는 여호와처럼 실삶으로 확인하며 누릴 때 억울함의 신기루는 빛에 어두움이 사라지듯이 점점 그리고 영원히 사라져 감을 확인하고 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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