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인연(因緣)의 실체

패스라 2013. 7. 17. 07:29

인연이란 어떤 결과에는 반드시 어떤 원인이 있다고 전제하고, 직접적인 원인을 인()이라 하고 그 인을 도운 간접적인 원인을 연()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인과 연을 분별하는 확실한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기에 결국 인연이란 사람들이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상상의 용을 그리듯이 신기루인 바람을 잡으려는 헛되고 헛된 불가능의 도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에서는 이런 인연을 정답으로 착각하여 모든 것이 인연을 따라 연기하는 것으로 주장하여 이것이 있으면 그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면 그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하면 저것도 멸한다는 생기소멸의 법칙을 주장하며 이런 논리를 따라 생각은 생주이멸, 몸은 생로병사, 사물은 성주괴공의 논리로 정답처럼 설명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미 묵상한 것처럼 부부나, 부모나, 자식의 인연은 전생에 수천 겁의 악연과 선연의 인연이 쌓인 결과라고 미혹하고 있을 뿐 아니라 피조물의 부족한 이성과 감성을 따라 외모인 공평 타당함의 논리로 판단하여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상상의 용을 그리는 것처럼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란 불확실한 논리의 주장에도 불구하고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달콤한 이 말이 유행가 가사가 되는 것처럼 정답처럼 세뇌되어 이 세상에서 보편적으로 널리 통용하고 있을 뿐 아니라

 

크리스천들도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하거나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거나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고 하는 것처럼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의 뜻이니, 예정이니 하면서 오히려 앞장서서 태초부터 감추인 신비처럼 보이는 복음인 여호와의 뜻을 가리고 가로막는 똥칠인 불의와 불법의 나팔과 꽹과리 소리를 울리는 것처럼

 

운명이니 숙명이니, 필연이니 우연이니, 악연이니 선연이니 하면서 의미를 부여하여 한번도 본적이 없는 상상의 용을 그리듯이 약속해요 이 순간이 다 지나고 다시 보게 되는 그 날 모든걸 버리고 그대 곁에 서서 남은 길을 가리란 걸 인연이라고 하죠 거부 할 수가 없죠 내 생애 이처럼 아름다운 날 또 다시 올 수 있을까요 고달픈 삶의 길에 당신은 선물인걸 이 사랑이 녹슬지 않도록 늘 닦아 비출게요라고 정답처럼 노래하므로 

 

결국 여호와께서 주신 이성과 감성을 따라 본능적으로 피조물의 한계를 극복하여 여호와처럼 이 세상이 절대로 줄 수 없는 온전한 평안인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누리려는 영생불멸을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기 위하여 도전하고 있는 것이지만

 

영생불멸이란 온전함을 전제하는 것이기에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상상의 용을 그리듯이 정답이 없는 헛되고 헛된 신기루인 이 세상의 것으로 스스로 구원을 이루려는 절대 불가능에 도전하기보다 태초부터 감추인 신비처럼 보이는 복음을 따라 이 세상의 것을 다 버리는 회개를 하라는 것으로 바로 알 때

 

태초부터 감추인 신비처럼 보이는 여호와의 뜻을 따라 회개함으로 피조물이 영생불멸의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변화의 신비인 복음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이 세상이 절대로 줄 수 없는 온전한 편안인 자유와 행복을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은 위에 있어도 수면 위를 운행하시는 여호와처럼 서로 사랑함으로 실삶으로 확인하며 영원히 누리는 것이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신기루 믿음이나, 교육, 훈련 등으로 미혹하여 세뇌함으로 죽음에 대한 억울함이나 두려움을 따른 불안함인 피조물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인연(因緣)을 비롯하여 운명이니 숙명이니, 필연이니 우연이니, 악연이니 선연이니 하면서 헛되고 헛된 신기루 논리로 복음의 본질을 왜곡 변질하는 등 온갖 감언이설과 권수술수가 난무하는 표리부동의 모습으로 그렇게 갈망하며 찾고 또 찾으려고 발악한 정답으로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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