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다는 의미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아무 탈이 없고 튼튼하다는 것으로 다시 말하여 온전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의미는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고, 뚱뚱하지도 않고, 야위지도 않고, 무겁지도 않고, 가볍지도 않고,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는 것처럼 모든 것이 적당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작다는 것은 크지 않아는 뜻으로 결국 부족하다는 의미가 내포하고 있기에 건강하지 않다는 말이 된다. 따라서 큰 교회나, 작은 교회 또는 아름다운 교회나 허물어져가는 교회처럼 교회에 접두사던지 무엇을 붙여 어떤 색깔이나 모양을 드러내려고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건강하지 않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 때문에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의 의미와도 배치될 뿐 아니라
얼마 전에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을 비롯하여 성경에 기록된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는 말도 바로 깨닫지 못하고 어떤 자격으로 그렇게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타인을 향하여 귀태라고 스스로 자신의 얼굴에 똥칠하는 참으로 못난이 짓을 스스로 대단한 선생으로 착각한 어느 국회의원이란 사람이 한 것처럼
건강한 작은 교회를 추구한다는 그 자체가 성경에서 말한 교회가 아니라 자신들의 부족한 이성과 감성을 따라 외모인 공평 타당함의 논리로 판단한 것을 정답으로 착각하여 결국 성경과 전혀 무관한 자신들을 위한 교회를 성경적인 교회처럼 스스로 자신의 얼굴에 똥칠하는 참으로 황당한 나팔과 꽹과리 소리의 못난이 짓으로 바로 알 때
예루살렘 성전 이외에는 어떠한 단도 쌓지 못하게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에 기록된 교회처럼 어디에 있는 교회란 것도 교회의 본질과는 상관없이 자신들의 자랑이나 실적을 위한 것으로 심각하게 고민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하나님을 영광을 위한다는 웃기는 짬뽕 같은 명분으로 공공연하게 지역의 분별을 아주 자연스럽고 당당하게 넘어
자신들의 부족한 이성과 감성을 따라 외모인 공평 타당함의 논리로 판단하여 자신들이 원하는 어떤 목적의 교회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추구하겠다며 교회 이름을 비롯하여 정관을 만들고 조직을 운용하는 것은 성경의 교회와 전혀 무관한 것으로 바로 이단일 뿐 아니라
태초부터 감추인 신비처럼 보이는 여호와의 뜻을 따라 회개를 하기보다 스스로 구원을 이루려는 절대 불가능에 도전하기 위하여 스스로 만든 신기루 도덕천과 헛되고 헛된 신기루인 이 세상을 표적으로 구하여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는 절대 불가능의 신기루인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고 절대 불가능에 도전을 강요할 뿐 아니라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는 달콤한 유혹과 협박으로 불가능의 도전을 강요하는 것은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달콤한 신기루 유혹으로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는 짓이 되어 그 결국은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는 그림처럼 멸망하여 실족함으로 바로 알 때
태초부터 감추인 신비처럼 보이는 여호와의 뜻을 따라 회개함으로 피조물이 영생불멸의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변화의 신비인 복음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이 세상이 절대로 줄 수 없는 온전한 편안인 자유와 행복을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은 위에” 있어도 수면 위를 운행하시는 여호와처럼 서로 사랑함으로 실삶으로 확인하며 영원히 누리는 것이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신기루 믿음이나, 교육, 훈련 등으로 미혹하여 세뇌함으로 죽음에 대한 억울함이나 두려움을 따른 불안함인 피조물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헛되고 헛된 신기루인 건강한 작은 교회란 명분으로 복음의 본질을 왜곡 변질하는 등 온갖 감언이설과 권수술수가 난무하는 표리부동의 모습으로 그렇게 갈망하며 찾고 또 찾으려고 발악한 정답으로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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