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나님께서 주시는 잠언3장19-35절의 말씀은
어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는 말씀이 목교세들이 왜곡한 투자의 개념이 아니라 나눔 즉 균등의 개념으로 “이제 너희의 넉넉한 것으로 그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그들의 넉넉한 것으로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균등하게 하려 함이라 기록된 것 같이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 라는 의미임을 말씀하신 후
오늘은 다시 잠언으로 돌아와 우리 인생이 사는 바른길 즉 평탄한 길을 가려면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의 지혜에 거해야 한다고 하시며
말씀하신 여러 가지 행동 지침 중에 특히 목교세들이 왜곡하여 악용하고 있는 “사람이 네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였거든 까닭 없이 더불어 다투지 말며” 라는 말씀을 묵상해 보자
이 말씀 중 일부인 다투지 말라는 말만 가지고 다투는 것은 나쁜 것인 것처럼 왜곡하여 오히려 불의와 불법을 보고 긍긍 거리며 입을 닫게 하여 결과적으로 모두 말씀의 본질과는 반대인 악의 길로 가도록 하여 넘어지게 한다.
따라서 말씀을 다시 보면 다툴 까닭이 있으면 다투라는 것이며 그 다툴 까닭은 바로 나에게 악을 행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가 불만과 불평을 속으로 위장을 하며 그런 것을 참는 것을 지혜로운 사람인 것처럼, 세상을 현명하게 살아가는 사람인 것처럼 왜곡하여 자신들의 이권과 야욕을 위한 비겁함과 용기 없음을 목교세들이 앞장서서 정당화시키는 불의와 불법을 자행하고 있다.
어제 방문한 한 집사가 목사와의 관계에서 해야 할 말을 차마 못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주변의 시선 즉 자신의 평가 때문이라고 하여 그것은 바른 것이 아니고 비겁한 짓이다. 정말 상대방에 대한 비난만이 목적이 아니면 서로 바르게 가지 위해서는 반드시 해야 할 말을 해야 한다고 했는데
우리 조각바람 식구들도 오늘 말씀의 본질인 사람이 네게 악을 행하는 것보다 그 것을 표현하는 방법을 문제 삼아 표현 자체를 못하고 긍긍 거리며 참고 있거나 참고 있게 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남의 문제까지 나서서 다툼을 할 필요는 없어도 나에게 악을 행하는 것에 대하여 표현방법 보다 즉 다툼이 있어도 표현 한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교세들은 이런 모습이 은혜롭지 못한 모습이라고 세뇌하여 결국 교회가 은혜 아닌 비겁함 속에 자란 악한 행실로 인하여 스스로 병들어 죽어 갈 뿐 아니라 이 세상도 썩어가도록 스스로 빛과 맛을 잃어가게 하고 있는 것이다.
조금 전 뉴스에서 천주교와 불교에서 지금부터 촛불집회 참석을 일단 보류하고 관망하겠다고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보수는 일단 접어두고 자칭 진보 기독교 지도자로 교회를 개혁하겠다는 자들은 먼저 자신들이 요구하는 것처럼 자신들에게 향한 지적에 대하여 눈과 귀를 막으면 지금처럼 천주교와 불교의 선택에 대하여 과연 무엇이라 할까?
다툼도 소통이 되지 않을 때 소통을 위한 도구로 필요한 것으로 이의 남용이나 오용도 곤란하지만 피하는 비겁함도 지혜나 의로움이 아님을 명심하고 누리는 오늘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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