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생각

어느 것이 쉽겠느냐

패스라 2009. 1. 18. 12:15

오늘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은 누가복음 5장 12-26절 말씀으로 먼저 어제 주신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라는 말씀은

 

목교세들이 강요하는 무조건 말씀 순종의 강요로 결국 하나님과의 사이에 가면을 만들므로 죽은 시체로 만들기 보다 복음의 진위여부를 확인하기 위하여 내가 확인이 가능한 것에 먼저 도전해 보는 것이 오히려 건강한 모습이며 그렇게 해야 오직 예수로 올인 할 수 있다고 하시며

 

우리들에게 그 천국의 복을 소유하여 누리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을 대신하여 율법으로 의롭고 순결하고 착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온전한 모습이 되신 후 그것을 믿음과 은혜로 받아 누리면 그것을 우리의 의와 순결로 인정해 주겠다고 하시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불의와 불법의 목교세들이 이루 말로 다 형언할 수 없는 그 고귀하고 소중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사역을 왜곡, 변질하여 미혹함으로 온 땅에 사랑이 넘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사랑의 이름으로 사랑을 죽여 그저 온 땅에 사랑의 시체들로 인하여 악취와 시끄러운 꽹과리 소리만 진동을 하고 있으며 

 

정말 말세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죄의 권세 속에서 위로를 받으며 소망을 가지고 끝까지 견디어 최후 승리를 소유할 수 있도록 주신 지침서인 요한 계시록의 말씀까지 이런 저런 이유로 금기하던지 아니면 자신들의 배를 채우는 도구로 사용하기 위하여 말씀의 본질을 왜곡 변질할 뿐 아니라  

 

구약시대에는 우리 스스로 통과하여 구원을 이룰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도구로 주셨지만 이제는 이미 빈 껍질이 되어버린 제사(형식적인 예배), 성전(교회), 제사장(목사), 십일조, 율법(착하고, 구별된 순결한 삶)을 비롯하여 이 세상이 요구하는 섬김과 나눔과 사랑에 매달리는 고난을 요구하는 삶은 오히려 하나님의 그 크고 놀라운 사역을 폄하하는 것으로

 

에베소서 4장에 말하는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절대로 갈 수 없을 뿐 아니라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 이 말세의 기간을 견디어 승리하기에는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불가능의 도전으로 이를 극복하는 비밀이 바로 구약시대와 신약시대, 천국과 이 세상을 분별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받아 누리며 서로 사랑하는 천제증인의 삶을 사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고 하시며

 

오늘도 보여주시고 들려주시는 말씀 중에서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묵상해 보자  

 

먼저 나병 들린 사람에게 고침을 허락하시고 소문을 내지 말라고 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예수님의 명을 받아 복음 전파를 하고 있는 지금의 목교세들과는 반대로 말이다.

 

그래도 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을 외면하고 왜 한적한 곳으로 피했을까? 지금의 목교세들과는 반대로 말이다.

 

그리고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째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 내리니 그 환자에게 본 믿음이란 어떤 믿음일까?

 

이에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말씀하신 것처럼 그냥 일어나 걸어가라고 하지않고 왜? 굳이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고 하였을까?

 

이는 바로 지금까지 일관되게 보여 주시고 있는 것처럼 당신이 바로 메시아 이시며 당신의 목적과 사명이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새 하늘과 새 땅인 천국에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포기한 이 땅을 회복하여 천국을 만들겠다고 앞장서서 발악을 하고 있으며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억지를 부리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하고 한심하다.

 

따라서 우리 조각바람 지체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 인생의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확실하게 믿어 자신의 편의에 따라 본질을 왜곡. 변질하여 미혹하고 있는 불의와 불법의 목교세들과 연합한 이 세상의 유혹과 위협이 아무리 사실과 현실처럼 그리고 태산처럼 밀려와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고 

 

또 아무리 진짜라고 큰소리 쳐도 죽음 앞에는 무용지물인 부부나 자식이나 부모나 이 세상의 그 어떤 관계보다 특별한 관계인 또 다른 나인 지체들과 이미 혼인잔치의 주인공으로 확정되어 기다리고 있는 새로운 나를 바라보고

 

종말을 소망하며 담대하게 누리고 즐기는 천제증인의 삶을 사랑의 속삭임으로 확인하고 감사하며 사랑함으로 행복해 하는 신나는 오늘이 되길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