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근원은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아담으로 출발한 우리 피조물 역사의 중심에는 태초부터 감추인 신비처럼 보이는 여호와의 뜻을 따라 여호와처럼 영생불멸의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은 위에” 있어도 수면 위를 운행하시는 여호와처럼 이 세상이 절대로 줄 수 없는 온전한 평안인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누리기 위하여 생명의 근원을 찾는 도전의 역사라고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생명의 근원을 찾아 소유함으로 여호와처럼 영생불멸의 새로운 피조물이 되지 못하면 지금까지 그렇게 하며 달려온 것처럼 그 어떤 인생도 생로병사 고락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한평생 찾아 헤매다 그저 허공 중에 흩어지듯이 허무하게 사라져 가는 무상의 인생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생인 생명을 불경에서는 연기법을 따른 인연의 결과물이라고 하면서 그 영생인 자성을 찾아 지금까지 헤매고 있고, 성경에서는 온전하고 영원한 생명인 영생의 무지로 영생을 찾는 도구로 주신 하나님의 호흡인 생기를
피조물의 부족한 이성과 감성을 따라 외모인 공평 타당함의 논리로 판단하여 영생인 생명으로 착각함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고 기록함으로
오염물질의 배출로 자연과 환경이 파괴되어 우리의 생명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나팔과 꽹과리 소리를 요란하게 울리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백세시대라고 하는 것처럼 우리의 수명은 오히려 점점 연장되고 있는 것처럼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고 정답이 아니라 신기루인 바람이나 구름 잡는 헛소리를 정답처럼 미혹하면서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고 함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생기가 죄로 오염되어 사망이 오는 것처럼
복음의 무지로 영생인 생명의 본질을 왜곡 변질하여 정답이 아니라 신기루 명분으로 바람을 잡으려고 발악하고 있지만 최초의 인간 아담은 여호와의 생기가 영생이 아님을 알고 여호와처럼 이성과 감성의 온전한 조화를 이루기 위하여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고 함으로 그 외모는 이성과 감성이 서로 도와 온전한 조화를 이룬 것처럼
영생인 생명을 찾은 것으로 착각하여 너무 기뻐했었고 또 이를 돕는 배필이라고 표현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라고 기록하여 부모도, 자녀도 없이 아담과 하와만 존재한 그 당시로서는 전혀 말이 되지 않는 헛소리를 정답처럼 미혹하고 있을 뿐 아니라
만약 아담과 하와가 그 당시 영생불명의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면 “그런즉 그들이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의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고 하는 것처럼
결혼을 하나님의 명령이나 뜻으로 미혹하는 정말 말도 되는 되지 않는 엉뚱한 헛소리를 성경에 기록하여 영생인 생명의 본질을 미혹하고 있음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할 뿐 아니라 그 헛소리를 정답으로 착각하여 지금도 힘들어 하고 있는 우리들의 결혼생활처럼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고 하므로 결국 그것도 온전한 조화가 아님을 깨달은 아담과 하와는 다시 영생인 생명을 찾아 방황하다
이번에는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하여 진짜 영생인 생명이 있을 것 같아 선악과나 생명나무 실과로 표현하고 있는 그 무엇으로 영생을 소유하려고 했지만 그것도 당연히 신기루이기에 실패하자 이를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것으로 표현하며
이번에는 영생인 생명이 자녀에 있는 것 같아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후 바로 자녀를 생산 했지만 그것도 역시 실패하자 그렇게 지금까지 영생인 생명을 찾아 달려오면서 피조물의 부족한 이성과 감성을 따라 외모인 공평 타당함의 논리로 판단하여 스스로 대단한 선생들이 되어 부모가 생명을 주었으니 부모가 영생인 생명의 근본이라고 강하게 주장하기 위하여 법을 만들어 강제 했지만 그것도 역시 실패를 하자
이번에는 생명의 근원을 이데아라 먼저 명명해 놓고 그것을 찾으려고 발악하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하는 등 실체가 없는 이성적인 논리와 주장으로 헤매다 “신은 죽었다”며 스스로 한계를 드러내며 실패를 선언하자
이번에는 다시 물이 생명의 근원이라고 그럴듯한 논리와 주장으로 정답처럼 표적을 구하는 나팔과 꽹과리 소리만 울리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자신들의 주장이나 논리를 따라 그렇게 갈망하는 생명의 근원을 찾아 영생을 소유하여 누리기보다 논리와 주장만 펼치는 선생이 되려고 발악하는 것은 그것들이 정답이 아님을 스스로 반증하는 것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사람들이 섬기는 신의 종류가 무려 수만 가지가 넘는다고 하는 것처럼 피조물의 부족한 이성과 감성을 따라 외모인 공평 타당함의 논리로 판단한 신기루인 바람을 잡으라는 주장과 논리를 오답으로 인정하는 회개를 하기보다
온전한 정답을 알지 못하기에 일본 사람들처럼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어느 것 하나도 버리지 못하고 각자의 멍에만 점점 더 무겁게 함으로 더욱더 깊은 미로 속을 헤매고 있기에 당연히 우울증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점점 변화되어가고 있음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 때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고 하는 것처럼 “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구부러진 것도 곧게 할 수 없고 모자란 것도 셀 수 없도다”고 하면서
그래서 이 세상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고 하는 지혜의 왕 솔로몬의 고백이나 제법 실상은 공 하다는 불교의 논리라도 바로 깨달아
피조물의 부족한 이성과 감성을 따라 외모인 공평 타당함의 논리로 판단한 하나님의 생기도, 연기에 따른 인연의 결정체인 자성도, 한 몸처럼 보이는 부부도, 나를 낳은 부모도, 내가 낳은 자녀도, 철학으로 대표되는 논리인 이데아도,
또다른 생명의 근원으로 주장하고 있는 물이나 다른 자연을 비롯하여 이 세상의 어떠한 주장이나 논리도 신기루인 바람을 잡으려는 절대 불가능의 도전으로 오히려 참을 가리고 가로막는 불의와 불법의 똥칠인 나팔과 꽹과리 소리가 됨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 때
태초부터 감추인 신비처럼 보이는 여호와의 뜻을 따라 회개함으로 피조물이 영생불멸의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변화의 신비인 복음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 바로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은 위에 있어도 수면 위를 운행하시는 여호와처럼
이 세상이 절대로 줄 수 없는 온전한 편안인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영생불멸의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피조된 것이 아니라 여호와처럼 스스로 존재하게 된 생명의 근원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