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불리치는 하나의 도구인 촛불은 여러 가지 편리함의 이유로 어두움의 세력을 물리치는 하나의 무기처럼 되어 제사, 예배, 생일 등 각종 행사는 물론이고 이제는 현실의 정치, 경제, 사회, 종교 등 어두움의 세력을 물리치는 진짜 무기처럼 되어 결국 촛불 집회라는 신조어가 생겨나게 되었으며,
이성과 감성의 온전한 조화처럼 원활한 소통을 위하여 바벨탑을 쌓듯이 몸짓이 언어와 문자가 되고 이를 좀더 원활하게 하기 위하여 법을 만들듯이 만든 필기구를 비롯하여 음향기기를 넘어 3차원의 종합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 컴퓨터와 핸드폰에 이어 이제는 그 모든 것을 총 망라한 것 같은 스마트 폰이 출현하였다.
그리하여 촛불은 외부의 어두음을, 스마트 폰은 내부의 어두움을 물리치는 멋진 무기로 착각하여 촛불집회를 함으로 스스로 그 옛날의 장수나 영웅호걸이 될 것으로 착각하여 발악함으로 더러는 신기루 같은 그런 사람이 나타나 이 세상에 잠시 이름을 떨치다 결국 사라졌고,
스마트 폰으로 카카오톡을 비롯하여 다 이해할 수 없는 꿈의 기능을 정답처럼 우리 피조물을 매료시키자 세대와 계층을 불문하고 그 유혹에 빠져 고통의 심음 소리를 승리한 즐거움의 비명처럼 착각하여 내지르므로 스스로 그 옛날의 장수나 영웅호걸이 된 것처럼 착각하여 발악함으로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신기루 같은 명분을 앞세우며 그것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자신들의 욕망과 야욕을 채웠던 것처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의 최고 삯꾼 선생들은 그것을 이용하여 옛날의 왕처럼 그것을 누리고 있을 뿐 아니라
블랙 해커니, 화이트 해커니 하면서 그 옛날의 장수 같은 세력이 등장하여 서로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하여 싸우며 우리들을 병졸이나 희생물로 이용함으로 결국 우리는 그 옛날 이름없는 민초나 병정들처럼 희생양이 되어 그냥 그렇게 사라져 가고 있음을 바로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소리 없이 어둠이 내리고 길손처럼 또 밤이 찾아 오면 창가에 촛불 밝혀 두리라 외로움을 태우리라 나를 버리신 내 님 생각에 오늘도 잠 못 이뤄 지새우며 촛불만 하염없이 태우노라 이 밤이 다 가도록
사랑은 불빛아래 흔들리며 내 마음 사로 잡는데 차갑게 식지 않는 미련은 촛불처럼 타오르네 나를 버리신 내 님 생각에 오늘도 잠 못 이뤄 지새우며 촛불만 하염없이 태우노라 이 밤이 다 가도록” 이라는 가요처럼
외로움이나, 억울함이나, 두려움인 어두움의 세력을 물리치기 위하여 촛불을 켜보지만 오히려 의미 없는 신기루 기억을 따라 추억에 빠져 초와 밤만 태우는 헛되고 헛된 신기루인 바람을 잡으려는 불가능의 도전만 계속했다는 것처럼 벌써 그런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그것은 블랙 해커를 피하여 화이트 해커를 선택하던지 아니면 반대로 하든지 결국 우리들의 정보는 언제나 뒷문이 활짝 열려있기에 결국 나라는 존재는 점점 의미가 없는 신기루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헛되고 헛된 신기루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을 뿐 아니라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는 것처럼
여호와의 본질은 말씀이 아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다는 것처럼 영생불멸의 생명이란 것이고 말씀은 우리 피조물의 육신처럼 외형이나 외모란 것으로 바로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생명을 바로 빛임에도 불구하고 피조물은 그 빛이 영생불멸의 여호와임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외모인 말씀만 쫓고 있다는 것이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는 것처럼 아무리 칠흑 같은 어두움도 빛이오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오직 밝은 빛의 세계인 영생불멸의 새로운 피조물의 세계가 열린다는 분명한 사실을 바로 안다면 우리들이 정답처럼 착각하고 있는 촛불 집회나 스마트 폰이 정답이 아님을 바로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만약 촛불 집회나 스마트 폰이 정답으로 그것을 통하여 생명인 영생불멸이 온다면 촛불 집회와 그에 따른 모든 주장이나, 스마트 폰이나 그에 다른 모든 것도 흔적도 없이 허공 중에 사라지거나 흩어진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바로 안다면 나의 주장을 비롯하여 내가 사라지는 촛불 집회나 스마트 폰을 그래도 정말 정답으로 믿고 그렇게 따를 것인지 깊이 고민해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정답인 영생불멸의 생명을 소유하지 못한 자들이 상상의 용을 그리듯이 피조물의 부족한 이성과 감성을 따라 외모로 판단하여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유혹으로 스스로 대단한 선생들이 되어 미혹하는 촛불과 스마트 폰 속으로 빠져들기보다
태초부터 감추인 신비처럼 보이는 여호와의 뜻을 따라 회개함으로 피조물이 영생불멸의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변화의 신비인 복음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이 세상이 절대로 줄 수 없는 온전한 편안인 자유와 행복을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은 위에” 있어도 수면 위를 운행하시는 여호와처럼
서로 사랑함으로 실삶으로 확인하며 영원히 누리는 것이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주장을 비롯하여 내가 사라지는 촛불 집회나 스마트 폰을 빙자하여 온갖 감언이설과 권수술수가 난무하는 표리부동의 모습으로 그렇게 갈망하며 찾고 또 찾으려고 발악한 정답으로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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