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두려움의 실체

패스라 2013. 6. 30. 07:44

성경에서도 사백 번 정도 두려움이란 단어로 불안, 공포. 무서움, 근심걱정을 조성하는 신기루 두려운 느낌인 벌과 화로 협박하며 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고 하면서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고 하는 것처럼

 

두려움 대신에 평안함인 자유와 행복을 주겠다는 달콤한 유혹과 위로인 신기루 복을 미끼로 우리들에게 과연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바로 알기 위하여 먼저 우리 피조물의 실체를 바로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스스로 존재하는 여호와께서는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은 위에 있어도 수면 위를 운행하신다는 표현처럼 이 세상이나 주변의 어떠한 조건이나, 환경에 상관없이 언제, 어디서나 이 세상이 절대로 줄 수 없는 온전한 편안인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누리는 것처럼

 

모든 피조물은 본능적으로 죽거나 사라질 수 밖에 없는 피조물의 한계를 극복함으로 여호와처럼 영생불멸의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 이 세상이 절대로 줄 수 없는 온전한 평안이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누리길 본능적으로 갈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피조물의 궁극적인 숙제인 목적과 사명을 피조물의 부족한 이성과 감성을 따라 외모인 공평 타당함의 논리로 판단하여 극복하려고 종교나 철학을 비롯하여 정치, 경제, 사화, 문화 등으로 발악을 해보지만 그 실삶은 절대 불가능의 도전이기에

 

결국 정답을 소유한 척하는 온갖 감언이설과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표리부동의 모습으로 스스로 위로하며 합리화를 하면 할수록 정답으로부터 점점 멀어져 가고 있음을 스스로 먼저 알기에 그 실삶의 현상인 죽음이 바로 피조물의 모든 억울함이나 두려움의 본질인 것이다.

 

따라서 두려움이나 억울함을 극복하여 온전한 평안인 자유와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원인은 우리들이 정답처럼 알고 있는 혈통이나, 학벌이나, 국적을 비롯하여 돈이나, 권력이나, 명예나, 건강 등 외모를 따른 이 세상의 조건이나, 환경이 아니라 죽음으로 바로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죽음을 극복하여 영생불멸의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방법도 종교나 철학을 비롯하여 정치, 경제, 사화 문화 등 이 세상의 대단한 선생들이 정답처럼 미혹하고 있는 이 세상의 복이라는 것을 소유하는 성공이 아니라

 

솔로몬의 고백처럼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헛되고 헛된 신기루일 뿐 아니라 우리 피조물의 이성과 감성을 따라 외모인 공평 타당함으로 판단한 경이나, 잠언이나, 어록이나, 자서전을 비롯하여 모든 주장과 논리가 절대 온전하지 못함을 인정하는 회개를 할 때

 

스스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하지만 피조물의 이성과 감성으로는 절대로 알거나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영생불멸의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기에 이를 태초부터 감추인 것처럼 보이는 신비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회개함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난 우리는 이 세상을 영화를 보듯이 그냥 박수를 치거나 화를 낼 뿐 신기루 유혹이나 명분인 이 세상에 끄들려 따라가지 않아야 하는데 이를 위하여 서로 발을 씻기며 서로 사랑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적을 구하고 있는 철학이나 종교를 비롯하여 이 세상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계 각층의 대단한 선생들은 스스로 소유하여 누리고 있지도 못한 영생불멸을 그들 스스로 만든 법인 윤리와 도덕을 비롯하여 섬김, 봉사. 나눔 등으로 가능한 것처럼 착각하여 정답처럼 미혹하므로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는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신기루 유혹과 명분을 멋진 세상을 만들자며 절대 불가능의 도전을 강요하는 나팔과 꽹과리 소리를 울리는 것은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이나 성경에 기록된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는 경고를 무시하고 자신들의 배만 채우고 있을 뿐 아니라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도다고 하는 경고나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는 경고를 무시하고 참을 가리고 가로 막는 불의와 불법의 똥칠을 하는 자가 되어 결국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는 그림처럼 됨으로 바로 알 때

 

태초부터 감추인 신비처럼 보이는 여호와의 뜻을 따라 회개함으로 피조물이 영생불멸의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변화의 신비인 복음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이 세상이 절대로 줄 수 없는 온전한 편안인 자유와 행복을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은 위에 있어도 수면 위를 운행하시는 여호와처럼

 

서로 사랑함으로 실삶으로 확인하며 영원히 누리는 것이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믿음이나, 교육, 훈련 등의 이름으로 미혹하여 세뇌함으로 죽음이요 사망의 신기루인 두려움이나, 억울함을 극복하기 위하여 온갖 감언이설과 권수술수가 난무하는 표리부동의 모습으로 그렇게 갈망하며 찾고 또 찾으려고 발악한 정답임을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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