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어머니 마음이나 은혜의 실체

패스라 2013. 7. 1. 08:21

낳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제 밤 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 자리 마른 자리 갈아 뉘시며 손 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오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 없어라

 

어려선 안고 업고 올려주시고 자라선 문기대어 기다리는 맘 앓을 사 그릇될 사 자식 생각에 고우시던 이마 위에 주름이 가득 땅 위에 그 무엇이 높다 하리오 어머님의 정성은 그지 없어라

 

사람의 마음속엔 온 가지 소원 어머님의 마음속엔 오직 한가지 아낌없이 일생을 자녀 위하여 살과 뼈를 깎아서 바친 마음 인간의 그 무엇이 거룩 하오리 어머님의 사랑은 지극하여라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높은게 또 하나 있지 낳으시고 기르시는 어머님 은혜 푸른 하늘 그 보다도 높은 것 같애

 

넓고 넓은 바다라고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넓은게 또 하나 있지 사람되라 이르시는 어머님 은혜 푸른 바다 그 보다도 넓은 것 같애 라는 어머니 마음이나 어머니 은혜라는 가사를 보면

 

어머니의 희생이나 헌신을 모성애라고 하며 이는 자식에 대한 본능적인 사랑으로 이 세상에서는 최고로 높고, 최고로 깊고, 최고로 넓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느 누가 문제를 제기하기보다 그저 인정을 하며 지내왔다.

 

그런데 문제는 모성애를 두고 태어난 이후에 배운 것이 아니라, 이성과 감성처럼 태어날 때 이미 갖추고 있는 능력인 본능이라고 하면서 이를 은혜라고 한다는 것은 좀 어색하지 않는가 왜냐하면 모성애가 본능이면 은혜가 아니고, 은혜이면 본능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실삶을 통하여 이를 분별하기 위하여 모성애의 실체가 정말 자식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을 위한 것인지에 대하여는 좀더 깊은 고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의 큐티와 실삶큐티로 확인한 것처럼 우리 피조물의 본능은 자식을 낳아 대를 잇는 것이 아니라 각자 자신이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은 위에 있어도 수면 위를 운행하시는 여호와처럼

 

주변의 어떠한 조건이나, 환경에 상관없이 언제나, 어디서나 이 세상이 절대로 줄 수 없는 온전한 편안인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누리는 것을 본능적으로 갈망하는 것이 피조물의 본능적인 목적이요 사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를 위하여 태초부터 감추인 신비처럼 보이는 복음을 소유하기 위하여 피조물의 부족한 이성과 감성을 따라 외모인 공평 타당함으로 판단하여 스스로 구원을 이루려고 에덴 동산에서 낳지 않았던 자녀를 쫓겨난 후 낳기 시작했다는 것은

 

자식을 위하여 자식을 낳은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하여 자식을 낳은 것으로 결국 모성애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은 자녀가 아니라 자신이 살기 위한 것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오히려 부모와 자식의 서로 관계가 당당해 질뿐 아니라 그 동안 이해되지 않아 고민하던 본능을 거부한 비정의 부모도 오히려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며

 

또 헛되고 헛된 신기루인 이 세상의 것으로 피조물의 한계인 죽음을 따른 모든 억울함이나 두려움의 불안함을 극복하려는 절대 불가능의 도전을 멈추고 솔로몬처럼 헛되고 헛된 신기루인 이 세상을 바로 깨달아 회개함으로, 복음으로 영생불의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 이 세상이 절대로 줄 수 없는 온전한 편안인 자유와 행복을 소유하여 여호와처럼 영원이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헛되고 헛된 신기루인 이 세상을 위하여 피조물의 부족한 이성과 감성을 따라 외모인 공평 타당함의 논리로 판단하여 스스로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법을 만들듯이 모성애란 이름으로 피조물의 본질을 왜곡 변질하며 정답처럼 미혹하여 괴물을 만드는 것은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이나 성경에 기록된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는 경고를 무시하고 자신들의 배만 채우고 있는 것일 뿐 아니라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도다고 하는 경고나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는 경고를 무시하고 참을 가리고 가로 막는 불의와 불법의 똥칠을 하는 자가 되어 결국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는 그림처럼 됨으로 바로 알 때

 

태초부터 감추인 신비처럼 보이는 여호와의 뜻을 따라 회개함으로 피조물이 영생불멸의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변화의 신비인 복음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이 세상이 절대로 줄 수 없는 온전한 편안인 자유와 행복을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은 위에 있어도 수면 위를 운행하시는 여호와처럼 서로 사랑함으로 실삶으로 확인하며 영원히 누리는 것이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믿음이나, 교육, 훈련 등으로 미혹하여 세뇌함으로 죽음에 대한 억울함이나 두려움을 따른 불안함인 피조물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피조물의 본능을 모성애란 이름으로 왜곡 변질하는 등 온갖 감언이설과 권수술수가 난무하는 표리부동의 모습으로 그렇게 갈망하며 찾고 또 찾으려고 발악한 정답으로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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