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는 성경 기록 때문인지 복음에 무지한 이사야는 태초부터 감추인 신비처럼 보이는 여호와의 뜻인 복음을 피조물의 부족한 이성과 감성을 따라 외모인 공평 타당함의 논리로 판단하여
사람들이 상상의 용을 그리듯이 하나님을 토기장이로, 우리 피조물을 이성과 감성이 전혀 없는 진흙으로 착각하여 비유하는 똥칠의 나팔과 꽹과리 소리로 참인 복음을 가리고 가로막는 불의와 불법의 행하고 있는데
그것은 “너희의 패역함이 심하도다 토기장이를 어찌 진흙 같이 여기겠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어찌 자기를 지은 이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나를 짓지 아니하였다 하겠으며 빚음을 받은 물건이 자기를 빚은 이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총명이 없다 하겠느냐”고 하고 있지만
이는 여호와께서 태초부터 감추인 신비처럼 보이는 복음을 깨달아 회개함으로 영생불멸을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은 위에” 있어도 수면 위를 운행하시는 당신처럼 이 세상이 절대로 줄 수 없는 온전한 편안인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누리길 바라며 도구로 주신 자유의지인 이성과 감성을 바로 알지 못하는 무지의 소산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진흙은 생기인 이성과 감성이 전혀 없는 것이기에 말을 하지 않는 것이지 만약 아담처럼 진흙에 생기를 불어 넣어 이성과 감성이 있다면 그리고 빗어진 자신들의 모습이 불만임에도 불구하고 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냐고 항변하지 않는다는 무식한 억지 논리의 주장을 참인 정답처럼 미혹하여 세뇌함으로
사회적으로 성공한 장애인이나 약자들이 하나님은 공평하다고 찬양함으로 자신들의 성공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원 받은 것으로 심각하게 착각하여 자랑인 신앙 간증으로 부른 배를 더 채우며 정답처럼 헛되고 헛된 신기루인 바람을 잡도록 미혹하고 있을 뿐 아니라
“토기장이가 그릇을 깨뜨림 같이 아낌이 없이 부수시리니”라고 하거나 “토기장이가 진흙을 밟음 같이 하리니”라고 하면서 이성과 감성이 없는 진흙이니까 가능한 것을 빙자하여 이성과 감성을 무시하는 무례한 폭력인 불의와 불법을 억지로 합리화하여 정당화함으로 온전하신 여호와를 폭군으로, 피조물을 죄인으로 미혹하여 세뇌함으로
“질그릇 조각 중 한 조각 같은 자가 자기를 지으신 이와 더불어 다툴진대 화 있을진저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너는 무엇을 만드느냐 또는 네가 만든 것이 그는 손이 없다 말할 수 있겠느냐”고 당연히 할 수 있는 말을 절대 하면 안 되는 말처럼 미혹하여 여호와께서 주신 이성과 감성을 소멸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신기루 이성과 감성을 세뇌한 괴물을 만들려고
“아버지에게는 무엇을 낳았소 하고 묻고 어머니에게는 무엇을 낳으려고 해산의 수고를 하였소 하고 묻는 자는 화 있을진저”라는 신기루 도덕천을 따른 공갈 협박으로 세뇌하여 참인 것처럼 기억하도록 교육하고 훈련하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라고 고백하며 참으로 믿도록 강요함으로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고 하는 것처럼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달콤한 유혹과, 무례한 위협과 협박으로 세뇌하여 여호와께서 주신 이성과 감성을 소멸하고 스스로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구하고 있는 표적인 스스로 만든 하나님을 여호와로 믿고 따르는 충성과 순종의 신기루 이성과 감성으로 세뇌하려고
믿음이란 이름으로 성전, 예배, 기도, 찬송. 주일성수, 십일조, 섬김, 봉사, 나눔, 사랑 등의 도구로 교육하고 훈련하여 기억하게 세뇌함으로 괴물을 만들어 참인 구원으로부터 점점 멀어져 가게 하고 있다는 분명한 사실을 실삶으로 확인할 때
태초부터 감추인 신비처럼 보이는 여호와의 뜻을 따라 회개함으로 피조물이 영생불멸의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변화의 신비인 복음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이 세상이 절대로 줄 수 없는 온전한 편안인 자유와 행복을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은 위에” 있어도 수면 위를 운행하시는 여호와처럼 서로 사랑함으로 실삶으로 확인하며 영원히 누리는 것이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믿음이나, 교육, 훈련 등으로 미혹하여 세뇌함으로 죽음에 대한 억울함이나 두려움을 따른 불안함인 피조물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진흙과 토기장이를 빙자하여 신기루 이성과 감성으로 세뇌함으로 괴물을 만드는 것처럼 복음의 본질을 왜곡 변질하는 온갖 감언이설과 권수술수가 난무하는 표리부동의 모습으로 그렇게 갈망하며 찾고 또 찾으려고 발악한 정답으로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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